아들아, 아버지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 들어보렴, 아들아. 내가 말을 하려는 지금 너는 잠들어 있구나. 나는 혼자서 네 방에 가만히 들어왔단다. 조금 전, 서재에서 서류를 보고 있자니 견디기 힘든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더구나. 죄책감에 마음이 아픈 채, 아빠는 지금 네 침대 곁에 앉아 있다.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다. 아들아, 나는 네게 짜증을 부렸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수건에 얼굴을 대는 시늉만 한다고 야단쳤다. 신발을 깨끗이 닦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네가 물건들을 바닥에 던졌을 때는 흥분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잔소리를 했구나. 음식을 흘린다, 꼭꼭 씹어먹지 않는다, 팔꿈치를 식탁에 올려놓는다, 빵에 버터를 너무 많이 바른다. 그런데도 내가 기차를 타러 나가는데 놀러 나가던 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아빠! 안녕!”하고 말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곤 대답이랍시고, “어깨 좀 쭉 펴”라고 말했다. 오후 늦게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길을 걸어오다 보니, 네가 보였다. 무릎을 꿇고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긴 양말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너를 앞세우고 집으로 향해서, 네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주었구나. “양말은 비싸다. 네가 사야 하는 처지였다면, 좀 더 조심했을 테지.” 기억하니, 아들아? 나중에 내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네가 수줍은, 상처 입은 표정으로 들어왔던 걸? 일을 방해받은 게 짜증 나서 서류 너머로 쳐다보니, 너는 문간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나는 으르렁댔지. “원하는 게 뭐야?”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폭풍처럼 서재를 가로질러 와서 두 팔로 내 목을 껴안고는 키스를 했다. 너의 작은 팔은 하느님이 네 마음속에 꽃 피워 놓은 사랑으로 나를 꼭 안아 주고 있었다. 그 꽃은 아무리 무시해도 시들지 않을 꽃 같았다. 그리고 너는 타박타박 계단을 올라 네 방으로 갔다. 그러곤, 아들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에서 서류가 스르르 미끄러져 떨어졌다. 갑자기 커다란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도대체 나는 습관적으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흠잡는 습관, 야단치는 습관, 이게 네가 어린 아이인데 대한 나의 보상이었던 거야.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어린 네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있었던 거지. 나에게 적용해야 할 잣대를 가지고 너를 판단하고 있었던 거지. 네 성격에는 좋은 점도 많고, 훌륭하고, 진실한 점도 많단다. 네 작은 마음은 저 높은 산을 뚫고 올라오는 새벽보다도 넓지. 내게 달려와 잘 자라고 입 맞춰 주는 네 행동만 보아도 알 수 있어. 아들아, 오늘 밤엔 그 행동 말고는 내게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난 어둠 속에서 네 옆에 이렇게 와 있다. 내가 부끄럽구나! 보잘것 없는 사과라는 걸 안다. 네가 깨어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하지 못할 말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일부터 이 아빠는 진짜 아빠가 될거야! 너와 친구가 될 거야. 네가 아프면 같이 아프고, 네가 웃으면 나도 웃을 거야. 짜증 내는 말이 나오면 참고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말할 거야. “아직 아이일 뿐이야, 아주 작은 아이!” 너를 어른처럼 생각하지는 않았나 두렵구나. 하지만 이렇게 작은 침대에 피곤해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너를 보니 넌 정말 여전히 아기구나. 바로 엊그제만 해도 넌 네 엄마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안겨 있었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랐구나.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구나. - 리빙스턴 라니드 ‘아들아, 아버지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 에서 - |